청춘분식 김순자 할머니 ‘민호가 마지막 떠먹은 국물’… 오열

반도신문 | 윤서진 사회부 기자

이민호 후보 의문사 소식이 전해진 지 12시간이 지난 오후 3시, 용궁포 전통시장은 평소와 다른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그 침묵을 깨뜨리는 것은 청춘분식에서 새어나오는 김순자(74) 할머니의 흐느낌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그 착한 아이가…” 할머니는 작은 알루미늄 냄비를 꼭 껴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 냄비는 엊그제 오후 이민호가 마지막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던 바로 그 냄비였다.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마시더니…”

김순자 할머니에게 21일 오후 5시는 이제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평상시처럼 혼자 들어온 이민호가 “할머니, 김치찌개 하나 주세요”라고 했던 그 순간부터.

“그날 그 아이 표정이 평소와 달랐어요. 뭔가 무거운 걱정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하면서도 눈빛이 슬퍼 보였어요.”

평소 10분이면 후딱 먹고 나가던 이민호가 그날은 30분 넘게 앉아 있었다.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천천히 떠먹으면서, 마치 그 맛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했다.

“평소엔 국물을 조금 남기고 가곤 했는데, 그날은 정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셨어요. ‘할머니 김치찌개가 이렇게 맛있었나요’라고 하면서 환하게 웃어주더라고요.” 김순자 할머니는 그 미소를 떠올리며 또다시 오열했다.

전통시장에 대한 마지막 걱정

전통시장 상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누구보다 걱정하던 이민호는 그날도 할머니에게 상인들 안부를 물었다.

“‘할머니, 요즘 장사 많이 힘드시죠? 임대료 문제도 심각하고…’라고 하면서 진짜 마음 아파하더라고요.” 김순자 할머니는 “그때 제가 ‘그래도 젊은 후보님이 나서주시니까 희망이 생긴다’고 했더니 눈물을 글썽이는 거예요”라고 회상했다.

이민호는 “어르신들과 젊은 사람들이 함께 잘살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60년, 70년 지켜온 이 시장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 정말 진심어린 표정으로 말하더라고요. 그런 마음씨 고운 아이가 왜…”

할아버지를 향한 마지막 효심

식사를 마친 이민호는 할아버지 이동수(82) 씨를 위해 멸치볶음을 포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할아버지가 요즘 입맛이 없으시다면서 할머니 멸치볶음을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 걱정하는 마음이 얼마나 애틋한지…” 김순자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현재 큰 충격에 빠진 이동수 씨는 오후 늦게 청춘분식을 찾아와 “그날 밤 민호가 가져온 멸치볶음이 우리의 마지막 식사였다”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예감이 있었던 마지막 인사

청춘분식을 나서며 이민호가 한 말이 지금은 유언처럼 느껴진다.

“가게를 나가면서 뒤돌아보더니 ‘할머니, 정말 고마워요. 할머니 덕분에 힘이 났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김순자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할머니 가게가 계속 번창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면서 평소보다 더 깊게 인사하더라고요.”

건어물가게 최건어(68) 씨도 “그날 민호가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상인들과 일일이 인사했다”며 “마치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추모 물결로 변한 시장

오후부터 청춘분식과 전통시장에는 이민호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민호를 열렬히 지지했던 대학생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조문했다.

용궁포대학교 김하늘(22) 씨는 “이민호 후보님이 마지막으로 드신 김치찌개를 저도 먹어보고 싶어서 왔어요”라며 “할머니가 얼마나 슬퍼하시는지 보니까 정말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했다.

젊은 창업가 김영호(29) 씨도 오후에 찾아와 “이민호 후보님이 꿈꾸셨던 전통과 현대가 조화하는 용궁포를 우리가 만들어가겠다”며 묵념했다.

음식에 담긴 정과 이별

전통시장 상인회 김상인(65) 회장은 “민호가 우리에게는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희망이었다”며 “그 아이가 없어진 지금, 다시 예전처럼 단절될까 봐 두렵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민호의 뜻을 이어받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시장을 만들겠다”며 “그것이 그 아이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다짐했다.

김순자 할머니는 “민호가 앉았던 그 자리를 아직도 치울 수가 없어요. 그 아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라며 “하지만 민호를 기억하는 젊은 친구들이 계속 찾아와 주니까 그래도 위로가 돼요”라고 말했다.

29세 청년의 마지막 식사 자리가 된 작은 분식집. 김순자 할머니의 김치찌개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젊은 정치인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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