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 ‘해양 보호구역 지정’ 요구… 개발 부지와 겹쳐

윤서진 기자

용궁포 앞바다 한복판에서 해녀 김정순(78) 할머니가 물질을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오는 오후 3시. 50년간 이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평소와 다른 물빛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색깔이 아니었는데…” 김 할머니는 바다 저편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봐온 바다 색깔이 아니야. 뭔가 달라지고 있어.”

김 할머니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용궁포 환경보호협회가 어제 해양수산부에 제출한 ‘용궁포 연안 해양보호구역 지정 신청서’에 따르면, 현재 서강철 시장이 추진 중인 3조원 규모 개발 사업 부지와 보호구역 지정 요청 지역이 70% 이상 겹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평균 2.3배 생물다양성” 과학적 근거 제시

환경보호협회 김미영(52) 회장은 “용궁포 연안 해역의 생물다양성 지수가 전국 평균의 2.3배에 달한다”며 “이는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법적 기준을 충분히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같은 과학적 데이터가 해녀들의 전통 지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김정순 할머니는 “우리가 50년 전부터 ‘이 바다가 특별하다’고 말해왔던 게 이제야 숫자로 증명된 거야”라며 “옛날부터 할머니들이 ‘용왕님이 사시는 바다’라고 했는데, 그게 빈말이 아니었어”라고 말했다.

해양학 박승호 교수(부경대)는 “용궁포 해역은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지점으로, 수온과 염분 농도가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하고 있다”며 “특히 멸종위기종 보호구역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박 교수팀이 지난 6개월간 실시한 해양 생태계 조사 결과, 용궁포 앞바다에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산호류 3종과 희귀 어류 12종이 발견됐다. 이는 제주도 연안과 비슷한 수준의 생물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녀 공동체 “전통 지식이 과학 만났다”

해녀들의 증언은 더욱 구체적이다. 물질 경력 45년차인 박영자(65) 할머니는 “깊이 15미터 아래 암반 지대에 형형색색 산호가 자라고 있다”며 “서울 사람들은 제주도 가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바다에도 똑같이 있어”라고 증언했다.

특히 해녀들이 ‘물질 금지 구역’으로 전통적으로 보호해온 지역과 이번 과학 조사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게 나타난 지역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김정순 할머니는 “할머니 때부터 ‘그 자리는 건드리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왜 그런지는 몰랐어”라며 “이제 보니 그 자리가 물고기들이 알 낳고 키우는 곳이었던 거야. 조상들이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거지”라고 설명했다.

법적 절차와 개발 사업 충돌 불가피

문제는 해양보호구역 지정 절차와 개발 사업 추진 일정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담당하는 이상민 변호사(환경법률센터)는 “해양보호구역 지정 신청부터 최종 고시까지 통상 18개월에서 24개월이 소요된다”며 “하지만 시 당국은 개발 사업을 6개월 내에 착공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해양보호구역 지정 신청이 접수되면, 해당 지역에서의 대규모 개발 행위는 법적으로 제한된다”며 “특히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공사 착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용궁포 해양보호구역 지정 신청서를 검토 중”이라며 “과학적 데이터와 지역사회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 “개발 vs 보존” 새로운 대안 모색

이런 상황에서 지역 시민사회는 ‘개발 대 보존’의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용궁포 시민연대 박철수(45) 대표는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가 아니라, 해양 생태계를 보존하면서도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안을 찾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미영 환경보호협회 회장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생태관광과 해양레저 산업 등 새로운 경제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며 “제주도 사례를 보면 환경 보존이 오히려 더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민호 예비후보는 지난주 선거사무소에서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적극 지지한다”며 “우리 바다의 소중함을 지키면서도 주민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순 할머니는 “개발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라며 “다만 우리가 대대로 지켜온 바다를 망가뜨리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라고 반문했다. “바다가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거야. 그게 자연의 이치 아니겠어?”

바다 위로 해가 지고 있는 오후 6시, 마지막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하나둘 물에서 올라온다. 그들이 50년간 지켜온 바다의 미래가 이제 법정과 행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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