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수온 상승·물고기 행동 변화 관찰… “조상이 물려준 지혜, 과학이 증명”
윤서진 기자
용궁포 앞바다에서 50년 넘게 물질을 해온 해녀 할머니들이 최근 바다에서 관찰되는 이상 현상을 두고 “이무기가 깨어나고 있다”며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전통 지식에 바탕한 이들의 우려는 해양 과학자들의 데이터 분석 결과와 놀랍도록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50년 경험이 감지한 바다의 변화
용궁포 해녀조합장 김정순(78) 할머니는 어제 오후 포구에서 만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바다가 화가 났다”며 “이무기님이 깨어나시는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이 바다에서 물질을 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야. 물색이 예전 같지 않고, 물고기들이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김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털어놓았다.
김 할머니의 증언은 구체적이고 상세했다. “평소보다 바다 온도가 2-3도는 높은 것 같아. 미역이며 다시마가 전부 누렇게 변하고 있고, 전복들이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어. 고등어 떼가 평소보다 한 달 일찍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기도 했고.”
해녀 경력 40년의 박영자(65) 할머니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고 전했다. “물질할 때 느끼는 조류가 달라졌어. 예전엔 규칙적이었는데 요즘은 갑자기 세졌다가 잔잔해지기를 반복해. 바다 밑바닥 모래색도 검게 변한 곳이 많아졌어.”
이무기 전설과 생태계 보호의 지혜
용궁포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무기 설화는 단순한 민담이 아니라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조상들의 생태 지식이 담긴 문화유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순 할머니는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무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바다에는 천 년을 산 이무기님이 계셔. 용이 되지 못하고 바다 깊은 곳에서 이 지역을 지키고 계시지. 바다가 더러워지거나 무리하게 개발하면 이무기님이 화를 내서 큰 재앙이 온다고 어른들이 늘 경고하셨어.”
전설에 따르면 이무기는 바다의 수호신 역할을 하며, 생태계 균형이 깨질 때 경고의 신호를 보낸다. “물이 뜨거워지고, 물고기가 사라지고, 바닷풀이 누렇게 변하는 건 이무기님이 분노하고 계시다는 증거”라고 김 할머니는 설명했다.
박영자 할머니는 “예전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포구에 큰 공장을 지으려고 했을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결국 태풍이 세 번이나 와서 공사가 중단됐다”고 증언했다.
과학 데이터가 입증한 전통 지식의 정확성
해녀들의 관찰이 과학적 사실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립해양연구원 김바다 박사는 “용궁포 해역의 최근 3개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해녀들의 증언이 놀랍도록 정확하다”고 밝혔다.
김 박사에 따르면 용궁포 앞바다의 수온이 평년 같은 시기보다 2.7도 상승했으며, 해조류의 생장 패턴과 어류 회유 경로에 뚜렷한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특히 미역과 다시마의 색소 변화, 전복의 서식지 이동, 고등어 떼의 조기 출현 등은 모두 수온 상승과 해류 변화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지표”라고 설명했다.
“해녀분들이 ‘조류가 이상하다’고 하신 것도 정확한 관찰”이라며 “연안 용승류의 강도가 평소보다 40% 증가한 것으로 측정됐다”고 김 박사는 덧붙였다.
개발 계획과 환경 영향 우려
해녀들은 최근 발표된 3조원 규모 개발 계획이 이무기의 분노를 더욱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정순 할머니는 “바다가 이미 화나 있는데 거기에 더 큰 충격을 가하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며 “이무기님의 마지막 경고일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해녀 이금순(72) 할머니도 “60년 전 태풍 사라호 때도 바다 변화가 먼저 시작됐다”며 “그때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아 무섭다”고 말했다.
김바다 박사는 “대규모 연안 개발이 진행될 경우 현재의 해양 환경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용궁포는 해류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어 작은 변화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 지식과 현대 과학의 만남
용궁포 해녀들의 사례는 전통 생태 지식이 현대 환경 과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로 평가된다.
환경정의연구소 이상민 소장은 “해녀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현장 관찰 데이터는 그 어떤 정밀 장비보다도 정확하고 종합적”이라며 “이무기 설화 역시 생태계 보호를 위한 전통 지혜가 문화 형태로 전승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순 할머니는 “과학자들이 우리 말이 맞다고 해주니까 다행이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이무기님께서 마지막으로 경고해 주시는 건데, 사람들이 알아듣기나 할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해녀들은 앞으로도 바다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며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알리겠다고 밝혔다. 박영자 할머니는 “바다가 우리를 먹여 살렸으니까 이제 우리가 바다를 지켜야지”라며 “이무기님이 다시 잠들 때까지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다짐했다.